사람인 맹자가 살던 시대에는 위와 같은 문제에 직면하면서, 인간에 대한 불신의 사건들이 난무했기 때문에 ‘인간이 도덕적인 존재인가?’, ‘도덕적인 존재라면 그 근거가 무엇인가?’와 같은 담론이 상당히 많이 존재했다. 맹자의 성선설을 비롯한 여러 가지 이론들은 이러한 사회적 배경에서 탄생
사람이 윗사람답게 아랫사람을 대하면, 아랫사람은 진정으로 윗사람을 섬기는 법입니다.
공자는 도둑이 많아서 걱정이라는 임금의 이야기를 듣고서 "당신이 백성들의 물건을 욕심내지 않으면, 백성들은 상을 준다고 해도 도둑질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일갈했습니다. 공자는 정치란 질서를 바로잡는
사람을 차마 해치지 못하는 정치를 행한다 면 천하를 다스림은 손바닥 위에 놓고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불인不仁에 안주하는 것을 ‘인忍’이라고 한다. ‘사람을 차마 해치지 못하는 마음’(不仁人之心)이 바로 인심仁心이고, ‘깜짝 놀라고 측은해 하는 마음’이다. 성왕은 백성과 더불어 좋
백성의 공복'들을 위한 이상적인 철학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공자의 대학은 사서삼경의 기본서로서 유학에 입문하는 입덕지문이라고도 한다. 즉, 대학은 논어 맹자 중용과 함께 중국 4서 중의 하나다. 대학에 나와 있는 내용을 대인들이 학문을 하는 자세를 언급한 것으로 대인들이 가야할 길과 마음자
맹자의 노력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주(周:BC 1111경~255)나라는 사회적·정치적 위계질서가 분명한 봉건주의 원칙에 바탕을 둔 국가였다. 따라서 신분이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 사이에는 분명하게 규정된 특권과 의무가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사람들의 야심과 음모로 인해 지위의 찬탈